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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중년의 엄마와 청소년으로 보이는 딸이 차 안에서 티격태격합니다. 딸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인 이 '새크라멘토'(지역 이름)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머무르기엔 너무 시골인데다가 재미없는 곳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지역을 벗어나 뉴욕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운전을 하던 엄마는 듣기 싫다는 듯 소리칩니다. "네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만약 그렇다 해도 우리 집은 돈 없어."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끊임 없는 잔소리... 딸은 듣기 싫은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다가 차라리 듣지 않겠다는 듯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립니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다말고 소리 지르죠. "꺅!"
딸의 이름은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팔에 깁스를 하고는 자신이 다니는 가톨릭 여자 고등학교에 등교합니다. 상담실에 불려간 그녀는 자신을 상담해주는 수녀님께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신 자기가 지은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 '레이디 버드'입니다.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보다 더 촌스러운 것 같은데 크리스틴은 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어쨌든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가 않은 듯 불평불만을 쏟아냅니다. 난 내가 직면한 현실보다 더 잘나고 멋진 사람인데! 왜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 걸까! 마치 이렇게 소리라도 지르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을 모르는 철없는 소녀입니다. 학교 뮤지컬 연습할 때 만난 남자친구에게 자기는 철도 옆 쪽의 '구린' 부분에서 산다고 말하며 부모님의 경제력을 비하하는 말도 서슴치 않고, 아빠가 태워주시는 차를 타고는 자기는 걸어가는 것이 좋으니 한 블럭 뒤에서 내려달라고 하면서 마치 아빠와 아빠의 차가 부끄럽다는 듯이 굴죠. 나중에는 학교의 잘나가는 부잣집 여자애와 친구가 되기 위해 사는 곳을 본래의 집이 아닌, 언덕 위의 멋진 2층 집이라고 속이는 짓도 합니다.
아빠는 이런 딸을 이해해주지만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딸과 부딪힙니다. 그 싸움은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끝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왜 부딪히는지 이해가 갑니다. 우리네 보통 엄마와 딸 사이도 저러니까요. 엄마는 어려운 집안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수준 이상의 것만 요구하는 딸이 이기적으로 보일 것이고, 딸은 이런 것도 해주지 못하는 집안이 구질구질한데다가 자신의 잠재력을 무시하기만 하는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죠. '레이디 버드'는 늘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지나 결말로 향할 수록 '레이디 버드'는 조금씩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하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엄마도 딸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여전히 못마땅한 구석이 있을 것이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딸과 엄마들이 그렇듯이요. 아마 앞으로도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나날들이 계속되겠죠. 그래도 이전과 같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은 없을겁니다. 엄마와 '레이디 버드' 아니, '크리스틴'도 느낀 게 많았을테니까요.
어쩌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질구질한 집안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난 그 집의 크리스틴이 아니라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레이디 버드라고 소리치고 있던 거 겠죠. 중2병 스러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그래서 탄생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녀가 더 이상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제 나는 현실을 깨닫고 성장해 나가겠다라고 결심했다는 게 아닐까요?
사실 '레이디 버드'를 보면서 제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공감이 갔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애들은 다 이런데 왜 엄마는, 아빠는 이런 거 못해줘! 하면서 싸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그대로 내보이기 싫어 거짓말이라도 하고싶은 유혹을 겪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초라한 우리의 단상을 레이디 버드에서는 적나라하고도 위트있게 드러냈습니다. 개성이 느껴지는, 통통 튀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리뷰를 적었지만 극 중 '크리스틴'의 친구 관계, 애인 관계의 변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신연령이 여전히 사춘기 시절에서 머무르고 있다라고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주연배우
시얼샤 로넌이 주인공인 '크리스틴'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이 배우는 앞서 영화 '어톤먼트'에서 브라이오니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 때 시얼샤 로넌의 나이는 놀랍게도 13살이었습니다. 워낙 영화의 캐릭터를 잘 살려서 연기한 나머지 13살의 어린 나이로 아카데미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그 때 시얼샤 로넌이 맡은 '브라이오니'라는 캐릭터가 워낙 욕을 먹는 캐릭터라 이 배우의 모습만 봐도 열이 오른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었습니다. 마치 악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한 나머지 그 배우를 보면 그 악역이 겹쳐보인다는 말과 비슷한 것 같네요. 둘 다 연기를 잘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얼샤 로넌은 94년생으로 현재 나이는 만 24살이며 할리우드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 기대합니다.
+티모시 샬라메도 출연했습니다. 극 중 '크리스틴'의 남자친구로, 매력적이지만 꽤나 나쁜 남자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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